작성일 : 23-08-20 20:10
스타베팅 이용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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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보연
조회 :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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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조할지가 남기고 간 파괴적인 현장 앞에 천지상인은 넋이 나간 얼굴이다.
싸울 의지를 상실한 천지상인은 빳빳하게 세우고 있던 검첨(劍尖, 칼끝)을 슬그머니 내렸다. 조금 전까지 충만하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공이 뛰어난 소년이라 생각했는데 검공의 현묘함은 상상 이상이다. 무당파 역사상 태극혜검을 정면으로 박살 낸 사람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그러나 연적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받았으니 이제는 돌려줘야 할 시간.
그의 무릎이 살짝 구부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지면을 박차고 힘차게 날아올랐다.
구천세법의 삼 식 운룡풍호.
연적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놀란 천지상인은 급히 전투태세로 돌아갔다.
박도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공기의 흐름을 뒤틀었다.
박도가 스치는 곳에서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용권풍(회오리바람)으로 변했다.
콰콰콰콰.
그런데 놀랍게도 용권풍 속에 언뜻언뜻 한 마리 청룡의 형상이 나타났다.
천지상인은 단번에 그것이 태극혜검처럼 도기가 형상화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용권풍 속에 용형도기(龍形刀氣)가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휘우우웅.
용형도기가 실린 용권풍이 천지상인의 몸으로 밀려갔다.
천지상인은 이를 악물고 순양무극공을 끌어 올렸다.
벌써 두 차례 태극혜검을 사용해서 그런지 내력은 얼마 모이지도 않았다. 이 정도 힘으로 태극혜검을 펼쳤다가는 기혈이 역류해 주화입마에 들고 말 것이다.
천지상인은 약간의 내력으로도 펼칠 수 있는 태극검을 시전하기로 했다.
송문고검이 용권풍 앞에서 원을 그렸다.
천지상인이 마지막으로 떠올린 단어는 당랑거철(鄭拒敵)이었다.
쿠우우-.
용권풍이 천지상인을 가볍게 찍어 눌렀다.
마치 애무하듯 천지상인의 몸통을 나선형으로 휘감고 내려간 용형도기는 지면에 닿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스스.
잘려 나간 머리카락과 옷 조각들이 천지상인의 발치에 소복이 쌓였다.
천지상인의 물건 중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건 송문고검밖에 없었다.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살기는 뺐는데. 잘한 건가 모르겠네.”
만약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면 옷과 함께 육신까지 갈려 나갔을 것이다.
“……고맙소.”
압도적인 무력을 경험한 천지상인은 패배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만수상방의 무사들은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칼질 하나로 십 장(약 30미터)이나 되는 길이의 깊은 고랑과 용권풍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적이라니!
그의 앞에서 토벌대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칼질 한 번으로 무려 십 장에 달하는 땅을 갈아엎은 사람이다. 그게 토벌대 위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토벌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천지상인이 터덜터덜 걸어 광풍검객 상무천의 앞으로 다가갔다.
상무천은 황급히 겉옷을 벗어 스승의 몸을 가려 주었다.
스타베팅 웃던 천지상인이 중얼거렸다.
“보았느냐?”
“예.”
“너도 천외천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토벌? 황제가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와는 대적할 생각도 하지 말거라.”
상무천은 공손히 대답했다.
솔직히 천지상인이 따로 당부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알았으면 돌아가거라.”
상무천이 고개를 들어 스승을 바라보았다. 어째 느낌이 싸하다.
“스승님은?”
“나는 당분간 이곳에 남을 것이다.”
“예?”
그러나 천지상인은 더 이상 설명해 주지 않았다.
상무천은 감히 더 묻지 못하고 토벌대를 이끌고 산을 내려가야 했다.
하산하자마자 상무천은 토벌대에 ‘오늘 목격한 것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명했다. 만수상방과 무당파의 위신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상무천이 입단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수상방의 실패는 하남성 남부에 퍼져 나갔다. 오봉산채는 ‘듣도 보도 못한 놈들’에서 ‘조금 센 놈들’로 알려졌다. 천지상인의 이야기는 와전된 것이라나.
오봉산채와 함께 유명해진 이름이 있다.
만수상방 무사들을 통해 ‘오봉산채를 지킨 열 명의 호걸들’에 대한 소문이 암암리에 퍼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열 명의 호걸을 ‘오봉십걸’이라 불렀다. 물론 보봉현과 그 인근 서너 개 현에서 그랬다는 소리다.
오월 말.
연적하는 움막 앞 평상에 길게 누워 모처럼의 오수(午睡)를 즐겼다.
그런 연적하 옆에 천지상인이 털썩 주저앉았다.
인기척에 눈을 뜬 연적하가 귀찮다는 듯 물었다.
“집에는 안 가요?”
천지상인이 산채에 머문 지도 벌써 보름.
그동안 천기가 어쩌고, 인연이 어쩌고, 하면서 자신의 곁을 맴돌고 있다. 도적들과 달리 노도사와 함께 있으면 심신이 상쾌해져서 싫지는 않다.
그런데 도사가 왜 산채를 어슬렁거리는 걸까?
“허허, 소협은 빈도의 별호를 벌써 잊으셨는가? 빈도는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방바닥 삼아…….”
“아, 네, 네.”
잠이 다 달아난 연적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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